BOOK_클루지Kluge

20200212WED_rainy

이 책의 목표는 인간의 마음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그 오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클루지란 무엇인가?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하는데 저자는 인간의 마음을 클루지라고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는 종종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클루지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상자' 밖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달리 존재할 수도 있었을까를 이해하는 것이 그 출발일 수 있다.
작동하는 것은 확산되고 작동하지 않는 것은 소멸한 뿐인 진화의 과정은 최적optimality이 아닌 적절함adequacy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다시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진화는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에 수정을 가하면서 작업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진화의 관성"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생존 자체가 최선의 진화를 방해하는 셈이다.
인간이 진화해온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솔직히 들여다보고 우리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고귀한 우리의 마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의 기억과 달리 우리는 일종의 '맥락 기억'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맥락이나 단서를 사용한다. 맥락 기억은 예비 효과의 영향을 받고 이런 간섭은 기억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런저런 신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며, 우리가 부적절한 정보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는지 눈치 채지 못하곤 한다. 심미적인 요인이 신념의 형성 과정에 개입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속아 넘어가도록 타고 난 셈이다.
초점 맞추기 착각, 후광효과, 닻 내림과 조정, 친숙효과 등의 정신적 오염의 예들은 우리의 사고 체계와 관련이 있다. 우리에게는 반사 체계와 숙고 체계, 두 가지 체계가 있으나 반사 체계가 미치는 영향은 아주 강력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하거나 마음이 산란한 경우에 숙고 체계는 가장 먼저 작동을 멈추는 경향이 있다. 즉 진화는 우리에게 신중한 사고를 위한 도구를 주었지만 이것을 아무 간섭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확증편향은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색하지 못하고 그냥 일치하는 것들을 찾는 맥락 의존적인 기억으로 인한 오류이다. 동기의 의한 추론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우리가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진화를 통해서 인간은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도록 자신을 속일 수 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추론하도록 진화하기 않았고, 신념에 현혹되어 주장의 논리를 주의 깊게 따지는 일을 너무 게을리한다. 우리가 아는 것과 추론한 것을 쉽게 혼동하는 까닭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이 두 가지가 별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동적으로 생기는 많은 추론들을 신념의 일부로 다루었을 것이고 그러한 진화의 단계를 따라 이미 신념과 추론이 너무 많이 뒤얽혀 있어서, 일상적인 사고에서 이 두 가지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해서 우리가 갖게 된 것은 클루지와 다름없다.

인간의 선택 능력에 있어서 합리성은 정상보다는 예외에 가깝다. 진화의 비교적 최근 산물인 의식적 의사결정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의 결정은 더 형편없는 것이 될 때가 많다.
우리의 뇌는 예상 효용expected utility에 둔감하다.
우리의 뇌는 돈을 상대적으로 계산하고, 가격과 가치를 혼동한다.
닻 내림 효과는 여기에서 다시 등장한다. 우리의 거의 모든 선택은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아니든, 문제가 어떻게 제기되는가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이런 문제의 표현 방식을 심리학자들은 틀 짜기framing이라고 부른다. 정치인들과 광고주들은 인간이 틀 짜기의 영향에 취약하다는 점은 언제나 이용한다. 어떤 상품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유쾌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적절하든 아니든 그 상품은 더 잘 팔릴 것이다. 맥락은 우리에게 생각할 재료를 제공함으로써, 신념은 물론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맥락과 합리성 사이에서 합리성은 언제나 진다.
진화의 과정에서 유기체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진화의 관성은 현대인이 이따금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 사이의 이러한 긴장이 현대인의 삶의 많은 부분을 규정하고 있다. 먼저 생긴 반사 체계가 얼마나 근시안적이든 상관없이 우리의 숙고 체계는 어쩔 수 없이 오염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미래를 깎아내리는 선택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결국 선택을 그르치게 되는 것은 논리와 정서 사이에 긴장이 생길 때다. 우리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존하는 선택을 하며, 선택에 대해서도 예비 효과가 작용한다.
이처럼 우리가 실제로 지니고 있는 것은 두 체계의 어중간한 결합이다. 맥락 기억처럼 낡고 부적당한 부분들로 이루어진 숙고 체계는 무진 애를 써야만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즉, 우리의 결정이 편향되기 쉬운 상황들을 밝혀내고 이런 편향을 극복할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지혜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몇 가지 증거들이 있다. 상례에 가까운 애매함, 비효율적인 중복성, 막연함, 시대의 변화에 따르는 가변성 등의 그것이다. 언어는 놀라울 정도로 멋지고 구속되어 있지 않으며 신축적인, 그러나 명백히 조잡한 클루지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아니라,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도대체 왜 인간이 행복에 관심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다. 왜 인간은 꼭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도 어리석게 많은 시간을 배회하는 것일까? 쾌락이 동기 유발자라는 생각은 일리가 있지만, 쾌락의 체계 전체는 클루지다.
쾌락을 지배하는 신경 하드웨어는 둘로 나뉘어 있다. 일부 쾌락은 숙고 체계로부터 파생되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쾌락은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의 영향 아래 있다. 그리고 이 체계는 근시안적인 편이며, 두 체계가 충돌할 때는 선조 체계에 무게가 쏠린다. 유전적 특징과 경험의 혼합 속에서 온갖 형태의 다양한 것들을 쾌락과 연관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런 바탕 위에서 행동이 이루어진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통제에 대해서도 갈망을 가지고 있다.
쾌락은 절충적이다.
우리의 쾌락 중추는 인간 종의 생존을 촉진하도록 완벽하게 조율된 몇몇 기제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손쉽게 (그리고 유쾌하게!) 속아 넘어가는 조야한 기제들을 잡다하게 모아 놓은 것이다.
왜 행복은 오래 머무르지 못할까? 그것은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거기에 익숙해지는 경향, 다시 말하면 순응 때문이다. 행복을 측정하는 우리의 능력은 형편없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행복의 장치 전체가 실제로 얼마나 클루지스러운지를 시사하는 또 다른 예다. 우리의 주관적인 행복감은 다른 많은 신념들과 마찬가지로 맥락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유동적인 것이다. 진화는 우리가 행복하도록 우리를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진화시켰다.

왜 이토록 우리의 마음은 허약할까? 뇌에 대한 요구(이른바 인지 부하cognitive load)가 증가하면 선조 체계는 평소대로 작동하는데 반해, 숙고 체계는 뒤처지기 시작한다. 특히 인지적인 위급 상황에서 숙고 체계가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 이런 능력은 우리를 저버린다. 진화는 조상 전래의 반사 체계에(그것이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우선권을 부여했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이따금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타고난 산만함은 조상 전래의 반사적인 목표 설정 기제들과 숙고 체계 사이의 어설픈 통합이 빚어낸 또 다른 귀결인 듯하다.
일을 미루는 행동은 클루지의 징후다. 뒤로 미루기는 미래를 깍아내리기, 즉 현재에 비해 미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과 쾌락을 편리한 나침반으로 사용하기 사이의 사생아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통제의 산에 오르기 위한 평생의 투쟁이다. 왜냐하면 진화는 우리에게 분별 있는 목표들을 세우기에 충분한 지적 능력을 주었으나, 그것들을 관철하기에 충분한 의지력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이 클루지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식은 개선을 향한 첫 걸음이다. 우리의 어설픈 본성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그것의 개선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작가가 말하는 클루지를 이겨내는 13가지 제안이다.
1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단순히 대안들의 목록을 작성해보는 것만으로도 추론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이나 가능성에 대해 성찰할수록 우리의 사고능력은 개선될 것이다.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맥락 기억은 우리가 언제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을 뜻한다. 우리가 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다시 우리가 어떤 대답을 찾아내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문제를 하나 이상의 방식으로 물어보는 것은 이런 편향을 교정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4 내가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5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유혹은 그 대상을 볼 수 있을 때 가장 크다.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조건 계획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감자튀김을 보면 그것을 멀리하겠다." 잘 짜여진 조건 계획은 추상적인 목표가 선조 체계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즉 모든 반사의 기본이 되는 "X이면 Y이다." 의 형태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오래된 체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9 누군가가 나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덜 편향된 결정을 내린다.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우리의 마음은 가까운 것과 먼 것에 대해 거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곧 가까운 것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반면에, 먼 것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를 되도록 자문해보아야 한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잠시 기다리는 것이다. 비합리성은 종종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반면에, 복잡한 결정은 시간을 두고 그것에 몰두할 때 가장 훌륭하게 이루어진다.
11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회적인 것을 경계하라. 비개인적이지만 과학적인 것에 특별한 비중을 두는 것은 생생한 것에 현혹되기 쉬운 우리의 성향을 보완해줄 것이다.
12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가장 신중한 결정은 가장 중요한 선택을 위해 아껴 두어라.
13 합리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라. 합리적으로 되자고 스스로 되뇌는 것이 유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하면 앞서 서술한 다른 기법들을 사용하도록 자신을 자동적으로 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